하루 온 종일 비가 내린다. 지난 화요일부터 왔으니 벌써 엿새째인가, 회색빛으로 구겨진 하늘이 생명력 없이 떠도는 휴지조각처럼 우울하기만하다.
오늘이 5월 14일, 그곳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인가.
“스승,” 문득 가슴 한쪽이 저리다. 씁쓸한 미소, 힘없이 떨구는 얼굴, “부끄럽다”는 말만 입안에 맴돈다.
교단에 선지 18년, 그 긴 세월을 난 무엇을 하며 살았나. 아직은 뒤돌아보며 옛날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지만 사라진 아틀란티스의 전설처럼 아련하고 희미하기만 하다.
언제나 입으론 진실을 말하라고 가르쳤지만 난 진실을 말하지 못했고
언제나 정직하라 떠들었지만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였다.
언제나 불의에 항거하고 맞서 싸우라고 말했지만 정작 너희들이 불의를 지적하면 교사의 권위와 알량한 권력으로 짓눌러버렸다.
언제나 대범하고 너그러우라고 말했으면서도 난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예민해져 소심했었고 작은 이익에 만족해서 큰일을 이루지 못했다.
언제나 입으론 성실히 노력하고 학업에 충실하라고 가르치면서도 나 자신은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져 스스로 노력하지도, 학업에 전념해서 실력 있는 교사가 되지도 못했다.
언제나 크고 원대한 꿈을 갖고 오늘을 인내하며 내일을 준비하라고 말했지만 정작 자신은 하루하루의 평안한 현실에 안주해서 더 나은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언제나 너희들에겐 긍정적이고 희망을 갖으라고 노래했으면서도 내면엔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너희들 앞에서 환한 미소 짓지 못했구나.
너희들이 인생의 좌표를 정하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방황할 때 그 숱한 불면의 밤들을 헤아려주지 못하고 단지 젊은 날의 고민과 사치로만 여겼던 내 자신의 무지와 몽매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너희들의 눈 속에 티끌은 왜 그렇게도 잘 보이던지, 만일 하나님이 내게 기회를 주신다면 모두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 할 텐데 아쉽게도 인생엔 연습이 없구나.
저기 녹슨 청동거울 속에 허리가 꾸부정한 사내가 흰머리를 휘날리며 날 쳐다보고 회한의 눈물을 떨군다.
하지만 아이들아!
아직 내겐 너희들이 있고 가야할 길이 있기에 희망이 있단다.
비록 나 지금 갈기갈기 찟기고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마지막 촛불이 다 타버리기 전에 너희와 함께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구나. 부끄럽게 내민 손 거절하지 말고 잡아주렴. 우리 나약하고 힘없을 지라도 아직은 젊으니 한 마리 황금독수리 되어 창공을 향해 비상하자꾸나. 미래는 노력하는 자의 것, 저만치 희망이 우리를 부른다. 넘어지고 깨어지고 창자가 튀어나오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무섭게 인내하고 노력하며 함께 가자꾸나.
우리의 만남이 삶의 한 과정에서 이루어진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아니라 의미 있고 보람된 만남이 될 수 있도록 서로 함께 애쓰자꾸나. 이담에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곳 금동산 하늘을 바라보며 뜨거운 열정으로 한 때를 살았던 한일의 젊은이들을 기억하게 하자꾸나.
우리 다함께 두 손을 맞잡고 어깨를 맞대고 나아가자.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갈매기 조나단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며 대지를 가슴에 품고 대양을 움켜지고 그날의 영광을 향해 무섭게 뛰어가자꾸나. 저기 멀리서 너희들의 미래, 너희들의 꿈, 너희들의 희망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우리를 반긴다.
아이들아!
너희들은 한일의 희망이요. 조국의 미래란다.
University of Illinois에서
박용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