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 중 전화가 정확히 13번이나 찍혀있었다. 모두 우리 집이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낫다는 느낌이 왔다.
집에 오니 아내가 침대에서 링거액을 맞고 있었다. 힘없이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방안에 내려앉았다.
밖으로 나오니 큰아이가 아무 말 없이 노려본다. 원망어린 시선이 비수처럼 가슴에 파고들어왔다.
미역국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교회에 보냈다. 이제 청소를 해야지. 시계는 벌써 10시가 넘고 있었다. 난 어쩌지 잠시 망설이다. 학교 근처의 교회에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아내에게 뭐라고 말하지,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았다. “여보, 미안해, 오늘 학교에서 1학년 주관으로 100일 잔치라는 큰 행사가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잠시 죽음 같은 침묵이 흘렀다. “꼭 가야해.”
시야를 가리는 한줄기 눈물, 운전하기 조차 어렵다.
예배 후 학교에 오니 이미 교정엔 인파가 넘치고 있었다. 환한 얼굴들, 모두들 행복한 모습들이다. 울어야하나 웃어야하나. 웃어야겠지. 오늘 같은 날. 갑자기 내 자신이 위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일 잔치는 성공리에 끝났다. 모두들 “역시 한일고등학교야” 라는 말 속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나 역시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대견해보였다.
아내는 결혼 후 지금까지 내게 그런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자신도 교사인 까닭인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었고 오히려 내가 너무 힘 드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했었다. 이젠 아내도 서서히 지치는 모양이다. 하긴 18년째 아닌가, 자신도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쳐야지, 집안 살림해야지, 우리 아이들 교육시켜야지. 남편이라는 놈은 결혼 후 지금까지 하숙생이니 안지친면 이상하지. 게다가 사춘기에 들어선 큰딸아이가 요즘 들어서 더욱 속을 썩인다.
사실 난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어렸을 때 날 가르치셨던 은사님께서 “넌 이다음에 사람을 구하는 직업을 가져라” 라고 내게 하신 말씀이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되었고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길을 후회한 적도 다른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다만 교사를 하다가 공부를 더해서 대학교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 후 결혼을 하려니 장인 될 분께서 내가 교사라는 이유로 딸을 줄 수없다고 결혼을 반대하셨다. 그때도 난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싶다. 오늘 밤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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